[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재계의 연말 조직 개편 무대에 젊은 오너들이 본격적으로 올라섰다. 단순한 ‘후계자’가 아니라 업계 최전선에서 실적과 의사결정으로 평가받는 자리에서 주목받는다. 이들은 부모세대의 노후한 포트폴리오를 손보고 새로운 성장축을 세워야 하는 과제 앞에 놓였다. 친환경·디지털 전환과 신사업, 글로벌 확장이 겹친 지금이 승부처다. 여기서 내놓는 전략이 기업의 ‘다음 10년’의 먹거리를 책임지게 된다. 막을 올린 뉴 리더십이 어떤 방향을 제시할지 변화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무탄소 추진 가스운반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화)
한화그룹의 승계와 성장축이 방산과 에너지로 모인다. 이 축의 중심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쥐었다. 한화가 사실상 ‘김동관식 방산·에너지 포트폴리오’로 다음 10년을 설계하는 구도로 가고 있다는 평가다.
17일 한화에 따르면 한화그룹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과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이 한화에너지 지분 5%, 15% 매각을 결정했다. 약 1조1000억원 규모다.
한화그룹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에너지 지분 50%를 확보했다. 동생들을 합친 몫을 웃도는 과반 주주가 됐다. 한화의 승계·투자 전략이 ‘방산+에너지 글로벌 포트폴리오’로 구체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화에너지는 ㈜한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과 연결된 지배구조의 허리이자, 태양광·LNG·수소·BESS를 묶은 에너지 플랫폼이다. 이번 지분 조정으로 한화에너지는 김동관 50%, 김동원 20%, 김동선 10%, 재무적 투자자 20% 안팎 구조로 재편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선 “삼형제 공동 회사”에서 “장남 중심 거점”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힘을 얻는다. 한화에너지가 향후 프리 IPO와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기업가치와 의결권을 동시에 키울 수 있는만큼 과반 확보가 곧 방산·에너지 중심 승계 방향을 공식화한 신호라는 해석도 뒤따른다.
김동관 부회장의 바깥 행보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또 다른 축을 만들고 있다. 한화는 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를 투입해 도크·안벽·블록 생산 설비를 확충하고, 연간 한 자릿수에 그치는 건조 능력을 두 자릿수 수준으로 키우는 계획을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조선 산업 재건 구상인 ‘마스가(MASGA)’의 핵심 축이다. 한화오션의 LNG선·함정 기술과 스마트야드 노하우를 필리조선소에 이식해 미 해군 함정과 에너지 운반선, 상선 수요까지 겨냥하는 장기 수주 기반을 다지겠다는 전략이다.
김 부회장은 현지에서 “미국 내 파트너들과 함께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창출하고 미국 조선산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다하겠다”며 마스가 프로젝트에 대한 의지를 직접 드러냈다.
중동에서도 메시지는 같았다. 김 부회장은 UAE 방산전시회(IDEX) 현장에서 “방산 협력을 공고히 하면서 조선·해양, 우주, 에너지 영역으로 협력을 확대해 양국 안보와 현지 경제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투자와 인사 방향도 같은 축을 가리킨다. 한화는 향후 5년간 국내 조선·방산 분야에 11조원, 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한화오션·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 등 방산·해양·미래기술 계열사에 임원·전문 인력을 집중 배치했다.
K9 자주포·천무 수출과 항공엔진·우주사업, LNG선 등 고부가 선박 수주가 겹치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실적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상승세다. STOL 무인기와 AI 함정·레이더·디지털 전장 솔루션 등 미래 방산 프로젝트도 본격 궤도에 올려야 하는 과제가 김 부회장 앞에 놓인 셈이다.
한화는 승계와 성장의 중심을 방산과 에너지에 두고 그 두 축을 김동관 부회장에게 모으는 선택을 했다. 한화에너지 과반 확보는 지배력 측면에서의 신호탄이다. 재계에선 막오른 김동관 체제에서 한화에너지·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오션의 숫자에서 성적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