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삼성전자가 테슬라·애플과 연쇄 대형 계약을 체결한 이후 미국과 일본에 총 70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며 글로벌 반도체 패권 탈환에 나섰다.
1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일본 요코하마시에 250억엔(약 2337억원)을 투자해 최첨단 패키징 연구소를 건설한다. 이는 지난달 테슬라(23조원), 애플(이미지센서) 수주에 이어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후속 투자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투자와 일본 요코하마 연구소를 포함해 총 500억달러(약 69조원)를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추가 패키징 시설 70억달러까지 더해지면 투자 규모는 80조원에 육박한다.
이재용 회장은 한미 관세 협상 지원차 지난달 29일 미국으로 출국한 뒤 15일째 현지에 머물고 있다. 관세 협상 지원이 당초 목적이었지만 협상 타결 후에도 체류를 연장하며 주요 빅테크 기업들과 추가 수주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는 이 회장이 미국 정부 관계자 외에도 고객사를 만나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투자 규모를 당초 370억달러에서 450억달러로 확대하는 방안도 직접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다음 고객으로 퀄컴과 구글이 유력하다고 본다. 퀄컴은 그간 AP 생산을 TSMC에 맡겨왔다. 삼성의 2나노 공정 수율이 개선되면서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다.
테슬라와의 23조원 계약은 2나노 GAA 공정을 활용한 AI6 칩 생산이 핵심이다. 계약기간은 2033년까지다. 매쿼리는 이 계약으로 연간 2조9000억원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애플과는 전 세계 최초 혁신 칩 제조기술을 공동 개발한다. 소니가 독점 공급하던 아이폰 이미지센서 시장에 삼성이 진입하는 의미가 크다. 연간 2억대가 판매되는 아이폰에 탑재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오스틴 공장에서 연내 라인을 새롭게 꾸려 내년 초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르면 2027년 이후 납품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투자는 최첨단 패키징 1위인 TSMC를 겨냥한 전략이다. TSMC의 패키징·파운드리·테스트 시장 통합 점유율은 올해 1분기 35.3%로 작년 동기 대비 6%포인트 올랐다.
삼성전자는 요코하마 연구소에서 도쿄대와 디스코(장비), 나믹스·레조낙(소재) 등과 협업한다. 일본은 패키징 핵심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집중된 곳이다.
최첨단 패키징은 GPU와 HBM 등 서로 다른 칩을 연결해 하나처럼 작동시키는 기술로, AI 반도체 제조의 핵심이다. 시장 규모는 2023년 345억달러에서 2032년 800억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연구소 운영을 위해 연면적 4만7710㎡ 규모의 '리프 미나토미라이' 빌딩을 매입했다. 삼성전자가 일본에 대형 빌딩을 보유하는 것은 2015년 롯폰기 본사 빌딩 지분을 매각한 이후 10년 만이다.
텍사스 테일러 공장은 올해 4월 "고객 없는 공장"이라는 우려를 받았다. 하지만 테슬라·애플 수주로 당초 2026년 가동 계획이 10월로 앞당겨졌다. 건설 진행률은 99.6%로 사실상 완공 단계다.
그동안 적자의 주범이었던 시스템반도체 사업부는 2분기에만 2조원 이상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까다로운 고객사들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추가 고객 확보에도 탄력이 붙었다.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TSP총괄을 강화하고 최첨단 패키징 전문가를 대거 채용하고 있다. 파운드리와 패키징을 묶은 턴키 서비스로 고객사 유치에 나서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테슬라·애플 수주가 파운드리 경쟁력 회복의 신호탄"이라며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의견을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목표주가를 8만~9만5000원대로 제시하며 주가 회복 기대를 드러냈다. 삼성전자 주가는 테슬라 계약 발표 이후 11개월 만에 7만원을 돌파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