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현대차그룹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3년 만에 2위에서 3위로 밀려났다. 수출 급감과 현지 판매 부진이 겹치면서 '전기차 강자'로 불렸던 현대차그룹의 위상에 금이 가고 있다.

현대자동차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의 상품성 개선 모델인 더 뉴 아이오닉5 (사진=현대차)

대미 수출 88% 급감..현지 생산 늘려도 판매는 감소

23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올해 1~5월 대미 전기차 수출량은 7156대로 전년 동기(5만9705대) 대비 88% 줄었다. 현대차는 3906대(-87%), 기아는 3250대(-89.1%) 수출에 그쳤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전동화 전략을 본격화한 2021년 이후 최악의 수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규모 현지 생산 투자에도 불구하고 판매가 오히려 감소했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은 70억달러를 투자한 조지아주 메타플랜트를 통해 올해 상반기에만 아이오닉5 2만8957대, 아이오닉9 4187대를 생산했다. 기아도 EV6 7441대, EV9 7417대를 현지 생산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지 생산 기반 구축에도 불구하고 상반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4만4555대로 전년 동기 대비 28% 감소했다. 미국 전체 전기차 시장이 5.2% 성장한 가운데 현대차그룹만 역성장한 것이다.

이로 인해 시장점유율도 11.0%에서 7.6%로 3.4%포인트 하락했다. 2022년부터 3년간 지켜왔던 2위 자리를 제너럴모터스(GM)에게 내줬다.

GM은 가성비 모델인 쉐보레 이쿼녹스(3만4995달러)를 앞세워 상반기 7만8167대를 판매했다. 이는 전년 대비 103.8% 급증한 수치다. 현대차그룹이 고급형 모델 위주로 현지 생산을 확대한 것과 대조적이다.

9월 세액공제 종료 추가 타격 불가피.."가격 경쟁력 앞세운 신모델 위협적"

하반기 전망은 더욱 어둡다. 트럼프 대통령의 'Big Beautiful Bill(OBBBA)' 시행으로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가 9월 말 조기 종료되기 때문이다. 당초 2032년까지 예정됐던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가 7년 앞당겨 완전 폐지되는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로 인해 현대차그룹의 미국 시장 전기차 판매량이 연간 최대 4만5828대, 매출로는 약 2조7200억원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수출 급감은 국내 생산기반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들어 아이오닉5와 코나EV를 생산하는 울산 1공장 12라인을 5차례나 가동 중단했다.

미국이 현대차그룹 전체 전기차 수출의 36%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대미 수출 급감은 국내 전기차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면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13만6180대로 45.3% 증가해 전기차 감소분을 일부 상쇄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의 부진 원인으로 모델 라인업 노후화와 경쟁 심화를 꼽고 있다.

한 전문가는 "E-GMP 플랫폼 기반의 아이오닉·EV 시리즈가 초기 참신함을 잃었다"며 "GM 등 기존 완성차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신모델로 전기차 시장에 본격 진입하며 현대차그룹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