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저성장을 넘어 제로성장을 향해 가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면 1% 이하의 낮은 물가 상승률이 동반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복사판 수순이다. 이는 한국이 장기 경기 침체에 빠질 위기라는 경고다.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저성장·저물가 국면으로 진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쇄 작용으로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제한된다. 낮은 인플레이션이 굳어지면 실질 금리 하락을 제약한다. 경기 대응을 위한 통화정책의 효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성장·저물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구조 개혁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 기술 혁신을 위한 대규모 투자 확대, 인공지능(AI) 규제 재검토, 신규기업 진입 활성 등 시장규제 완화가 중요한 과제다.

주식시장의 ‘코리아디스카운트’ 해결도 시급한 과제다. 기업 수익성과 자산 가치에 비해 주식 가치가 크게 저평가 되고 있다. 기업들은 자사주 취득 및 소각, 밸류업 공시를 통해 저평가 돌파 노력을 기울인다.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 등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한 법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체질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단기적인 이벤트로는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결 할 수 없다. 지배구조 개혁이 동반되는 정책만이 저평가 분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한국정경신문 창간 15주년을 맞아 저성장, 저물가, 저평가를 돌파하기 위한 산업 분야별 기업들의 구조개혁과 정책을 짚어본다. 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한국 기업들의 해외 시장 공략이 국내 경제가 직면한 '3底(저성장·저물가·저평가)' 상황을 돌파하는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한화솔루션은 미국 시장에서의 현지화 전략을 통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하며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얼티엄셀즈 제 2공장인 미국 테네시주 배터리 공장. (자료=연합뉴스)

"미국에 이미 많은 공장을 갖고 있어 선진입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 3월 인터배터리 2025에서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CEO가 한 말이다. 그의 예상대로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374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38.2% 증가한 호실적을 거뒀다. 해외 시장 공략을 통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한 것이다.

한화솔루션 역시 미국 태양광 시장에서 17분기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세액공제가 이끈 LG에너지솔루션의 실적 개선

LG에너지솔루션의 1분기 매출액은 6조26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3747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38.2% 급증했다. 호실적의 배경에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생산세액공제(AMPC)가 있다.

1분기 AMPC 금액은 직전 분기보다 21% 증가한 4577억원이다. 이를 제외하면 83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을 것이다. 미국 현지화 전략이 실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CFO 부사장은 "북미 지역 선제적 투자를 통한 EV 수요 대응, 원통형 제품의 견조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완성차 업체들의 보수적 재고 정책과 ESS 전방 수요의 계절적 비수기 영향으로 매출이 소폭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재료비 하향 안정화와 비용 효율화를 통한 원가 절감 노력으로 손익이 크게 개선됐고 북미 판매 증가에 따른 생산 보조금도 반영돼 20%의 EBITDA 마진을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JV 공장을 포함해 미국 내 총 7개의 공장을 운영 또는 건설 중이다. 특히 미국 내 첫 원통형 배터리 전용 공장인 애리조나 공장은 내년 말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와 리비안 등 완성차 업체와 애리조나에서 생산될 원통형 46시리즈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산 배터리에 대한 수요 증가에 맞춰 추가 공급도 논의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현지 생산 전략은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 강화 속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특히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가 예고된 상황에서 현지 생산 기반을 확충한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미국 카터스빌 공장 전경 (자료=한화솔루션)

한화솔루션, 미국 태양광 시장 석권

한화솔루션은 미국 태양광 시장에서 현지 생산 확대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 달튼 공장에서 2019년부터 태양광 모듈을 생산하고 있다. 올해 4월부터는 카터스빌 공장에서도 모듈 생산을 시작했다.

두 공장의 생산능력을 합하면 8.4GW로 이는 미국 전체 수요의 25% 수준에 해당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화솔루션은 미국 주택용과 상업용 태양광 모듈 시장에서 각각 17분기, 12분기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박흥권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미국사업본부장은 "2025년 초부터 공장이 풀(Full)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라며 "미국에서 공장도 추가로 건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솔루션은 조지아주 카터스빌에 총 3조원을 투자해 '솔라허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잉곳, 웨이퍼, 셀, 모듈 등 태양광 에너지의 모든 생산 공정을 포함하는 통합 생산 단지다. 완공 시 미국 내 생산 비중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려 관세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최근 관세 정책의 영향으로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 기업이 발생하고 있지만 한화솔루션은 미국에 보유한 생산설비로 보다 유연하고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내 태양광 모듈 가격도 저점을 기록한 이후 상승세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생산·유연한 대응·원가 절감이 성공 비결

LG에너지솔루션과 한화솔루션의 해외 시장 공략 성공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현지 생산을 통한 정책 활용이 첫 번째 성공 요인이다. 미국 IRA와 같은 보호무역 정책 속에서 현지 생산 기반을 확충함으로써 세제 혜택을 받고 관세 부담을 줄였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올해 1분기에만 IRA를 통해 4577억원의 세액 공제를 받았다.

시장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응도 주효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 침체에 대응해 ESS 배터리 생산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한화솔루션 역시 태양광 모듈 생산에서 시스템 통합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원가 절감 노력 또한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원재료비 하향 안정화 및 비용 효율화를 통한 원가 절감으로 수익성을 개선했다. 한화솔루션도 생산 효율화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해외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글로벌 경기 변동과 각국의 정책 변화에 더욱 민감해질 수 있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의 정책 변화가 빈번해 연간 전망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특히 자동차 관세 영향으로 배터리 수요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경기 둔화와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에도 불구하고 현지화 전략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들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