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은퇴 후 평생의 꿈이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20kg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걷는 이 길은, 관절 통증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여기 한 은퇴자는 한국산 웨어러블 로봇 ‘윔(WIM)’의 도움을 받아 짐의 부담을 8kg 수준으로 줄이고 완주에 성공했다.
“윔이 아니었으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갈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기술이 평범한 사람의 한계를 넘어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순간이다. 위로보틱스 김지영 팀장과 연구진에게는 이보다 더 큰 보상이 없다.
노트북 한 대 무게의 초경량 웨어러블 로봇. 위로보틱스는 재활과 운동을 넘어 일상까지 ‘걷는 삶’을 바꾸고 있다.
▲ ‘윔’은 어떤 로봇이고, 기존 외골격 로봇과 무엇이 다른가
윔은 사람이 입는 초경량 로봇이다. 기존 외골격 로봇은 무겁고 복잡해 주로 산업현장이나 병원에서만 썼다. 윔은 1.6kg, 노트북 한 대 무게다.
관절마다 무거운 모터를 다는 대신, 하나의 모터로 고관절, 무릎, 발목까지 동시에 보조한다. 단일 모터 차동 메커니즘이 핵심이다. 착용감이 가볍고 조작도 간단하다.
▲ 실제로 윔이 어떻게 움직임을 도와주나
윔은 사용자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해야 동작한다. 다리를 들고 밀 때 로봇이 그 움직임을 감지해 힘을 보탠다. 한 발짝이라도 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쉽게 더 멀리 걷게 해준다.
가만히 있으면 로봇도 움직이지 않는다. 보행 보조뿐 아니라 근육에 부하를 주는 모드도 있어 근력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
▲ AI·빅데이터 기반 보행 분석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나
보행 속도, 보폭, 균형, 근력 등 다양한 데이터를 센서로 수집한다. 이 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에게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한다.
보폭이 짧아지거나 균형이 흐트러질 때 즉각적으로 운동 가이드를 제시한다. 앞으로 더 다양한 운동 모드와 피드백을 개발할 계획이다.
▲ 일반인도 쉽게 착용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어떤 점을 신경 썼나
스마트폰처럼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직관적으로 설계했다. 착용법은 간단하고, 앱이나 별도 디바이스로 보행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고령층이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1500명 이상이 체험센터를 다녀갔고 고객 피드백을 제품에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 위로보틱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해 집중하는 연구개발 분야는 무엇인가
더 가볍고, 더 슬림하며, 더 저렴한 웨어러블 로봇을 만드는 것이 핵심 목표다.
현재는 두 가지 버전에 3~4개 모드만 제공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달리기, 비대칭 보행(편마비 등)처럼 다양한 상황에 맞는 맞춤형 모드를 개발할 계획이다.
각각의 사용자 상태에 따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기능, 더 많은 상품화도 고민하고 있다.
현재 전용 앱을 통해 본인의 보행 결과 등을 확인할 수 있지만, 어르신들은 앱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제품은 최첨단 로봇이지만 실제 사용자는 시니어 등 디지털 기기에 가장 취약한 분들이다.
오히려 최첨단 기술이 가장 먼저 필요한 층이기 때문에, 얼마나 더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느냐가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다.
▲ 실제 임상이나 현장 테스트에서 어떤 효과가 있었나
2021년 6월 설립된 위로보틱스는 2023년 기술을 완성하고, 같은 해부터 본격적인 임상 테스트에 들어갔다.
수원시 영통구 보건소와 광교 인근에서 독거 어르신을 대상으로 8주간 운동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운동 전과 4주, 8주 후에 보행 속도, 보폭, 균형감, 근력 등을 측정했고 보건소 간호사와 물리치료사가 평가에 참여했다.
결과는 뚜렷했다. 무릎, 발목, 엉덩이 근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40대 이후 하체 근력이 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8주 만의 변화는 의미가 크다.
참가자들은 자신감 있게 보폭을 넓혀 걷게 됐고 사진과 데이터를 통해 자세와 균형의 개선도 확인됐다.
▲ 의료·재활 외에 실제 현장에서 윔이 쓰이고 있는 사례가 있나
현재 경찰, 국립공원 레인저, 환경미화원 등 다양한 현장에서 윔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환경미화원은 반복적인 허리 숙임과 차량 오르내림으로 관절에 무리가 많다. 국립공원 레인저도 무거움 짐을 들고 하루에도 몇번씩 산을 타기 때문에 관절에 무리가 가기 쉬운 직업이다.
이런 케이스에서 윔이 관절 부담을 줄이고 부상 예방에 도움을 준다.
지자체(용인, 서울, 창원, 천안 등)도 별도로 윔을 구매해 평생교육원, 노인정, 경로당 등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 윔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윔은 의료기기가 아니라 운동기구, 즉 가전제품으로 분류된다. 의료기기로 출시하면 타깃이 명확하고 정해진 환경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에 오히려 출시가 쉽다.
하지만 윔은 가전제품으로 시장에 나와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사용 환경과 기대에 모두 부응해야 한다.
의료기기는 의료진이 사용법을 안내하지만 가전제품은 누구나 직접 구매하고 바로 사용하기 때문에 착용법, 안전성, 내구성, 소비자 보호 기준 등 모든 면에서 훨씬 더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는 전자제품 안전기준과 소비자 보호법을 적용받고 있으며 모터·배터리 등 주요 부품의 안전성, 방진·방수(IP65 등급) 등 내구성도 자체적으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윔은 자사몰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고 7일 이내 반품도 가능하다.
온라인 판매, 빠른 피드백,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실제 사용자 경험이 제품 개선에 신속하게 반영된다는 점이 글로벌 경쟁사와 가장 큰 차별점이다.
2024년 기준 700대 이상 판매됐으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록이다.
▲ 가격 정책과 대중화 전략은 어떻게 되나
목표는 스마트폰 수준의 가격이다. 아직 국내 생산이라 단가를 낮추기 쉽지 않지만, 양산과 공정 혁신을 통해 점진적으로 가격을 낮추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쓸 수 있도록 구독 서비스나 렌탈 등 다양한 유통 방식도 준비 중이다.
▲ 윔이 고령화 사회에서 사회적 비용 절감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건강한 여명의 시간을 길게 하려면 보행이 필수 능력이다. 130세 시대를 바라보고 이 제품을 만들고 있다.
걷지 못하면 생활 반경이 줄어든다. 이는 우울감이나 자신감 저하로 이어진다. 혼자 걸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간병비용, 요양병원 입원, 간병 등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
독립적 이동 능력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은 고령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다.
실제로 윔을 통해 산책, 여행, 사회활동에 다시 나서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 상반기에는 손의 움직임까지 구현하는 상반신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일 예정이다.
윔의 기술 개발도 지속하고 있다. 기존에 없던 다양한 운동 모드와 비대칭 보행 지원 그리고 더 쉬운 착용법 등도 연구 중이다.
더 가볍고 더 똑똑한 웨어러블 로봇을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