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구조적 전환의 중대 기로에 섰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과 HD현대가 대산 나프타분해설비(NCC) 통합 협상에 본격 돌입했다. 업계 전반에 ‘빅딜’ 압박과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단순 적자 방어를 넘어 고부가가치·친환경 중심의 산업 체질 개선이 현실적 과제로 부상했다.

국내 10개 NCC 중 상당수는 중국발 공급과잉, 원가경쟁력 약화, 글로벌 수요 둔화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이 시황과 무관하게 석유화학 설비 증설을 지속하면서 한국산 범용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빠르게 약화됐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자료=롯데케미칼)

롯데케미칼·HD현대, ‘합작사 통합’으로 효율화..SK·LG·한화, 자산 매각과 고부가 전환 병행

롯데케미칼은 2025년 1분기에 1266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LG화학은 전체 연결 기준으로는 447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석유화학 부문만 놓고 보면 565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여천NCC는 최근 3년 연속 영업손실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급과잉 구조가 2030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보고서를 인용하며 “더 이상 미루면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는 합작사 HD현대케미칼을 통해 연 85만t의 에틸렌을 생산 중이다. 이번 통합 논의는 롯데케미칼 대산 설비까지 한 법인에 합쳐 중복 설비를 줄이고 생산량을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자회사 HD현대코스모를 흡수합병하며, 바이오디젤·SAF 등 친환경 신사업 투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SK지오센트릭은 SK그룹 내 석유화학 부문을 담당한다. 울산 NCC 등 범용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 2.0’ 전략에 따라,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사업을 제외한 국내외 범용 석유화학 자산 매각을 추진 중이다. 친환경·고부가 전환을 내세우고 있지만, 일부 친환경 사업은 수익성 악화로 축소·조정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LG화학은 여수NCC 2공장 매각을 시도했으나 자산가치 산정 이견으로 협상이 결렬됐다. 여천NCC 역시 3년 연속 영업손실로 매각설이 제기됐지만 실제 매각이나 대규모 구조조정은 공식화되지 않았다.

각사는 비용 절감과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구책에 집중하고 있지만 지역경제와 고용, 이해관계가 얽혀 구조조정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고부가·친환경’ 전환이 관건..산업 대전환의 골든타임

이제 업계의 최대 화두는 ‘생존’이 아니라 ‘전환’이다. 롯데케미칼은 2030년까지 고부가 스페셜티 및 친환경 사업 비중을 전체 매출의 60%로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SK지오센트릭과 HD현대 역시 친환경 소재, 바이오 연료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고부가·친환경 신사업의 수익성, 글로벌 시장 진입 장벽, 지역경제와 고용 조정 등 넘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구조조정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며 “기업별 전략과 실행력이 시장 판도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