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상반기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횡령 등으로 곤욕을 겪었던 은행권이 하반기에도 내부통제와 고객중심 경영을 최대 화두로 삼았다. 우선순위에서 다소 밀렸던 디지털 혁신 등 미래 먹거리 방안도 재차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금융그룹과 시중은행들이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하반기 주요 추진 전략을 모색한다.

4대 금융지주 본사 전경 (자료=각사)

지난 8일 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하반기 경영전략을 점검한 신한은행은 고객의 실리를 높이기 위한 ‘고객몰입’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객의 선택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체계 구축을 제시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본업을 통해 고객에게 신뢰를 얻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결국 ‘고객에게 선택받는 은행’이 되기 위함”이라며 “내부통제를 위한 제도와 시스템의 규범을 준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고 거래하는 은행’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직원들이 내부통제 자체를 문화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반기 은행권을 흔들었던 홍콩H지수 ELS 손실 사태와 대규모 횡령·배임 사고를 염두에 두고 조직문화 차원에서 내부통제 체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는 12일과 26일 하반기 경영전략회의를 앞둔 우리금융·우리은행도 내부통제 체계 구축 방안을 짚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우리은행의 한 지방 영업점에서 대리급 직원이 허위대출을 일으켜 약 180억원을 빼돌린 대규모 횡령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이번 횡령 사고와 관련해 관련 직원에 대한 엄중한 문책과 내부 교육을 통한 재발 방지를 약속한 상태다.

조병규 은행장은 문책성 인사조치 이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올바른 마음가짐과 책임감”이라며 “은행장으로서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고객신뢰와 영업력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연내 도입이 예정된 책무구조도 역시 은행권이 하반기 내부통제 고삐를 죄는 이유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별로 책무를 배분한 내역을 기재한 문서다. 금융사의 주요 업무에 대한 최종책임자를 특정함으로써 횡령 등 금융사고 발생 시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로 위임할 수 없도록 도입됐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1일부터 시행되면서 금융지주·은행은 내년 1월 2일까지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을 유도하기 위해 시범운영기간을 도입하고 이 기간에 참여하는 금융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오는 19일 하반기 경영전략 회의를 앞둔 KB금융그룹 측은 “각 계열사별로 내부통제 제도개선 TFT를 구성해 경영진 및 직원 스스로 ‘내부통제 주체’라는 인식변화를 위한 책무구조도 조기도입을 적극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지주 전 부서 부서장과 팀장을 대상으로 내부통제 제도 개선과 관련해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이달 말 TFT 운영을 마칠 예정이다.

KB금융과 국민은행은 디지털 혁신과 상생금융도 하반기 주요 추진 전략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올해 시무식과 상반기 그룹 경영진 워크숍, 계열사 경영전략회의 등에서 상생금융을 제1과제로 강조한 바 있다.

앞서 진행된 ‘디지털·IT부문 전략워크숍’에서는 전 계열사의 디지털·IT 부문 경영진 50여명이 모여 ▲생성형AI 기술의 내재화 ▲비대면·디지털 중심의 코어뱅킹 현대화 ▲마이데이터 기반의 계열사 간 협업 전략 등을 논의했다. KB금융은 금융권 최초로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지주를 포함한 9개 금융 계열사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그룹 공동 생성형 AI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매년 하반기 문화 포럼 형태로 조직문화와 관련해 릴레이 강연을 진행했던 신한금융의 경우도 올해만큼은 ‘디지털 혁신’을 핵심 주제로 포럼을 진행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디지털과 관련해 우리 현주소를 점검하고 향후 어떻게 추진해 나갈지 임직원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상반기 금융권에 홍콩 ELS 사태와 횡령 사고 등 굵직한 이슈가 많았다”며 “책무구조도 도입을 앞두고 내부통제 이슈를 빼놓을 수 없겠지만 디지털 전환, 상생금융 등 그간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서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