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갑질'에 중소기업 두번 운다..현대중공업 증거 인멸, 피해 보상 엄두도 못내

김수은 기자 승인 2020.07.30 19:10 의견 1
울산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본사. (자료=현대중공업)

[한국정경신문=김수은 기자] 현대중공업이 협력업체였던 삼영기계의 기술을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 역대 최대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해당 혐의를 부인한 채 행정 소송을 검토중이다. 삼영기계는 일방적인 거래 단절로 영업이익이 579%나 감소하는 등 막대한 타격를 입어도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 이 때문에 대기업의 '갑질'에 생사가 엇갈리는 중소기업을 위해 제도적인 보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6일 현대중공업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9억7000만원의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공정위의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관한 처벌은 해당 법인에 벌점으로 누적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공공입찰 참여의 제한이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도 있지만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하는 동안 기존 사업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의 누적 벌점은 이미 영업정지 기준인 10점을 넘었다. 이런 가운데 현실은 공정위의 의결서를 받을 때까지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시간을 벌어 준' 셈이 된다.

업계 관계자는 “하청 의존도가 높은 국내 조선업의 경우 불공정 행위가 관행처럼 되풀이돼 왔다"면서 "경험상 과징금 처분이 회사 경영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부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공정위 조사 과정을 거치면서 핵심 증거가 상당 부분 사라지기 때문에 기술을 빼앗긴 중소기업은 보상받을 길마저 사라진다”고 호소했다.

■ 현대중공업 기술 유용 직후 삼영기계 매출 57%, 영업이익 579% 추락

현대중공업이 협력사 삼영기계의 기술 자료를 빼돌려 다른 업체에 넘기기 시작했던 2015년 한 해 매출은 46조3176억이었다. 벌어들인 액수에 비해 과징금은 터무니 없이 적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중공업의 기술 유용 직후 삼영기계의 매출은 급격히 하락했다.

삼영기계 관계자는 “거래 비중이 90%를 차지하는 주거래처인 현대중공업과 앞으로도 계속 거래를 이어나가기 위해 기술 자료를 넘긴 것인데 자료가 다 넘어간 이후 현대중공업의 발주 물량이 대폭 줄었다”면서 “지난 2014년 현대중공업과의 거래액은 약 203억이었는데 기술 유출이 일어난 직후인 2017년에는 22억원으로 90% 줄었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삼영기계의 2018년 매출액은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던 2015년과 비교해 57%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579% 줄어들었다”며 기술 유용으로 인한 피해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다른 협력사인 A사에 제공한 자료는 삼영기계 자료가 아니며 피스톤 관련 사양 등이 담긴 단순 참고자료”라며 기술 유용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지난 24일 공정거래위원회 문종숙 기술유용감시팀장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삼영기계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현대중공업 제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자료=공정위)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요청으로 삼영기계가 넘긴 작업 표준서 등 기술자료에는 (삼영기계 측이) 잘못 작성한 흔적이 같은 위치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명백한 증거가 담긴 자료를 현대중공업이 다른 협력사인 A업체에 넘긴 것이다.

다른 협력사에 넘긴 확보된 자료는 현대중공업의 기술 유용 혐의를 밝히는 데 핵심 증거가 됐다. 과징금 처분을 이끌어낸 증거로 활용됐지만 나머지 증거들은 공정위 조사 착수 전과 조사 진행 과정 중 대부분 사라졌다. 현대중공업 한영석 사장과 임직원들이 직원용 PC에 저장된 중요 파일을 외장 하드로 옮기고 PC를 숨기는 등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 송갑석 의원 "갑질 연루된 대기업 총수, 올해 국감에도 소환할 것"

이보다 앞서 지난 6월 30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이 하도급 불공정거래와 관련해 공정위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증거를 인멸했다”며 현대중공업지주 권오갑 회장 등 임직원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현재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임직원 4명은 대전지법에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증거인멸로 공정위가 관련 자료를 확인하고 증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현대중공업의 기술 유용으로 삼영기계는 생사의 기로에 놓일 정도로 타격이 크지만 관련 증거가 상당 부분 사라져 피해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중기부와 특허청 등 행정부에도 수사기능을 확대하고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대기업의 기술 탈취 등 불공정 관행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는 물론 교육,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현대중공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를 강력하게 질타했던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실 관계자는 “앞으로 기술탈취한 대기업은 손해배상액을 최대 10배까지 상향할 것”이라며 “갑질 근절을 위한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물론 올해 국감에서도 현대중공업 등 갑질에 연루된 대기업 총수를 소환해 갑질 행태를 낱낱이 밝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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