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카페야? 아이돌 숍이야?..팬심 모이는 '그들만의 공간'

컵홀더이벤트 카페, '뉴한류' 아이템 부상..'공감 커뮤니티'로 성장할지 주목

지혜진 기자 승인 2019.08.08 01:01 | 최종 수정 2022.01.10 10:46 의견 1
뉴이스트 황민현의 컵홀더이벤트를 진행 중인 서울 강남 도산공원 인근의 카페. [자료=지혜진 기자]

[한국정경신문=지혜진 기자] “방탄소년단 멤버 진 좋아하세요?”

커피를 주문했는데 황당한 질문이 돌아왔다. 엉겁결에 “네”라고 대답하자, 방탄소년단 진의 얼굴이 새겨진 컵홀더와 포토카드를 건네받았다. 방탄소년단의 팬이나 일가 친척이 운영하는 카페려니 생각했다. 그 후로 프렌차이즈가 아닌 작은 개인 카페에 방문할 때면 종종 같은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아이돌 스타의 지인이 아니라 팬들이 자발적으로 제작한 '굿즈'를 맡겨둔 곳이란 걸 알게 됐다.

'굿즈'는 아이돌, 영화, 드라마, 소설, 애니메이션 등 문화 분야에서 특정 인물이나 장르, 정체성 등을 드러낼 수 있는 요소를 활용해 제작한 상품을 말한다.

더 나중엔 카페에서 아이돌 사진이 새겨진 컵홀더를 나눠주는 것이 "컵홀더이벤트"라고 불린다는 걸 알았다. 호기심이 생겨 지난 5일과 6일 서울 일대 카페를 돌며 취재를 시작했다.

컵홀더이벤트는 주로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을 전후해 축하 문구가 담긴 컵홀더나 스티커, 카드 등을 카페에 맡겨 두면 다른 팬들이 와서 찾아가는 구조다. 컵홀더를 받으러 온 한 아이돌 팬(28, 여)에게 물어보니 ‘홈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주로 이런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했다. 이런 카페만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를 ‘덕지순례’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팬을 뜻하는 ‘덕후’에 성지순례를 합친 말이다.

홈마는 ‘홈마스터’의 준말로 아이돌의 사진과 동영상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팬들 사이에선 영향력 있는 존재로 “탑시드(top seed, 상위 순위)”, 즉 인기 있는 홈마는 팔로우 수가 수십만에 달한다. 아이돌뿐 아니라 홈마를 좋아하는 팬들도 따로 있다고 한다. 이들 홈마는 카페에 자신이 제작한 컵홀더를 맡기는 것은 물론 카페나 영화관 자체를 대관해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에버글로우 시현의 컵홀더이벤트를 진행 중인 서울 강남 학동역 인근의 카페. [자료=지혜진 기자]

제약 있는 프랜차이즈보다는 개인 카페에 더 적합해

사실 컵홀더이벤트는 진입 장벽이 낮은 이벤트 중 하나다. ‘큰손’으로 불리는 홈마가 나서거나 십시일반 금액을 모아야 가능한 지하철 광고나 옥외광고판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컵홀더나 스티커를 제작해 개인 카페에 전달만 하면 끝이다. 카페 측도 대체로 별도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유인 요인이 확실한 만큼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팬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미도록 카페 공간 일부를 내주는 곳도 적지 않다.

지난 5월 방문했던 카페를 이달 5일 다시 찾았다. 5월 당시 카페 메뉴를 먹으러 온 사람은 기자 일행밖에 없는 것 같아 당황했던 곳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벤트 아이돌이 워너원 출신 박지훈에서 황민현으로 바뀌었다는 것뿐. 기자가 2층에 앉아있는 동안 기념촬영을 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팬들이 많았다는 점은 같았다. 외국인 팬도 상당했다. 박지훈 생일 이벤트 때는 약 두 시간 동안 10명 정도가 2층에 올라왔는데 그중 절반 정도가 외국 팬이었다.

카페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카페 매니저는 “이벤트 기간에는 일반 고객 비중이 3 정도라면 팬들은 7 정도 온다. 외국인 팬도 많이 온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수치를 알려주진 않았지만 “이벤트 운영이 카페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했다. 컵홀더를 비롯한 굿즈를 받으려면 음료를 주문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굿즈에 별도 비용이 책정된 것은 아니지만 팬들의 방문이 고스란히 매출로 연결되는 것이다.

인기 아이돌일수록 팬들의 방문이 많아진다. 한 명이 카페에 방문할 때마다 4000원에서 5000원 사이의 음료 매출이 발생한다. 영세한 카페일수록 컵홀더이벤트가 가게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일반 고객에게 피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음료를 온전히 즐기기보다 사진찍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또 팬들이 너무 많으면 잘 모르는 사람은 어색할 수도 있다.

[자료=컵홀더광고 대행사 홈페이지 캡처]

■ 대행업체에서 아이돌별 맞춤 메뉴까지 등장

컵홀더이벤트를 대행해주는 업체도 등장했다. 대부분 개인적으로 제작해 카페에 직접 연락을 취하는 구조지만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다 보니 중개업체도 등장한 것이다. 업체에 문의 결과 컵홀더 제작은 물론 원하는 지역의 제휴 카페에 비치까지 알아서 해준다고 했다. 카페에 별도의 비용을 내야 하냐고 묻자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대관료를 요구하는 카페와는 제휴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대관료를 받는 카페는 어떤 곳일까. 대부분 컵홀더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많았다. 아예 대관 전문 카페로 자리매김한 곳도 눈에 띄었다. 아이돌 전용 굿즈 상점이나 전시회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는 곳도 있었다. 심지어 기존에 알던 카페인데 외관이 온통 아이돌 사진으로 뒤덮여 있어서 같은 곳인 줄 모르고 지나친 경험도 있다.

어떤 카페는 아이돌에 특화된 메뉴까지 개발해준다고 했다. 취재가 이뤄진 기간은 워너원 출신이자 뉴이스트 황민현의 생일 전후라 황민현 전용 세트가 있었다. 아이돌이 좋아하는 색깔이라든지 팬들만이 알 수 있는 상징을 메뉴화한 것이었다.

혹시 다음달에 예약할 수 있느냐고 묻자 한 달 전에 예약하는 건 어렵다고 답했다. 내년 1월 일정이 지금 잡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인기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자신들은 예약이 잡히면 광고주인 팬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한 후 콘셉트를 함께 잡아간다고 답했다. 그러다 보니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방탄소년단 정국의 생일을 맞이해 오는 29일부터 전 세계 카페에서 컵홀더이벤트가 열린다. [자료=트위터]

■ '컵홀더투어'까지 등장..전국 곳곳은 물론 세계로 진출

취재를 하다 보니 ‘컵홀더투어’라는 용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컵홀더이벤트가 열리는 카페를 차례로 순방하면서 카페별로 다른 컵홀더와 스티커, 포토카드 등을 수집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관광명소에 가면 인증샷을 올리는 행동과 비슷해 보였다. 팬들은 좋아하는 스타의 이벤트를 하는 카페를 방문하고 해시태그(#컵홀더투어, #컵홀더이벤트)를 걸어 SNS에 게재했다. 여행 후기를 남기듯 블로그에 후기를 올리기도 했다. 방문하며 얻게 된 컵홀더는 팬들에겐 소장가치 있는 기념품이 되는 셈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수도권 지역은 물론 부산, 대전, 대구, 제주 등 전국에 퍼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까지 뻗어 가는 양상도 보였다. 다음달 1일 방탄소년단 정국의 생일을 맞이해 한 ‘홈마’는 서울, 부산을 비롯해 일본(도쿄, 오사카), 대만(타이베이), 필리핀(마닐라), 미국(뉴욕, 로스앤젤레스, 애틀랜타), 캐나다(토론토, 몬트리올), 브라질(상파울루) 등에서 컵홀더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K-POP 아이돌로 인해 발생한 이색적인 카페문화가 '글로벌 팬문화'로 확산할 수도 있는 또다른 '문화 한류'를 예고하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자발적으로 굿즈를 생산하고 홍보하는 프로슈머(생산자+소비자)의 모습 이면엔 저작권 문제가 엄존하기 때문이다. 홈마 제품에 자주 사용되는 사진이 콘서트나 팬사인회 현장이다 보니 저작권이 해당 행사 주최측에 있는 것이다. 또 굿즈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수익이 발생할 경우 세금 등 행정적인 문제나 이익 배분에서 소속사와의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폐업이 흔할 만큼 포화 상태인 카페 시장이 아이돌 팬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할 지도 주목된다. 이미 이와 같은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카페들은 커피보다 공간 대여에 방점을 두고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가 '공부나 일하기 좋은 공간'으로 각광받은 것처럼 상대적으로 영세한 개인 카페는 특정 집단을 겨냥한 '공감 커뮤니티'로 기능할지 는 오로지 '팬심'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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