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정규직 전환의 허실] ① 나가는 이는 있어도 들어오는 이가 없다

이혜선 기자 승인 2019.07.12 10:47 | 최종 수정 2020.01.07 11:05 의견 0

최근 유통업계에 정규직 전환 바람이 불고 있다. 현장에선 희망가를 불렀지만 현실은 공염불에 그쳤다. 정규직화의 그늘 아래 직원이 퇴사를 해도 충원이 이뤄지지 않아 기존 직원의 업무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 10여년째 최저임금 언저리에 있는 이들은 '2등 국민'에 머물러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허상을 현장 목소리를 토대로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유통업계에 정규직 전환 바람이 불었지만 실제 노동자들의 삶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료=이혜선 기자)

[한국정경신문=이혜선 기자] 이른바 '빅 마트 3사'는 업계 불황을 이유로 직원 충원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자발적인 퇴사로 결원이 생겨도 충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셀프 계산대를 도입해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자연 감축을 시도하기도 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4년 1분기~2019년 1분기) 이마트에서 일하는 총 직원의 수는 1594명 줄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는 43명의 직원이 줄었다. 홈플러스(홈플러스와 홈플러스 홀딩스 직원 합산)는 5년 전보다 직원 1998명이 줄었다.

이 기간 이마트의 점포 수는 141개에서 142개로, 롯데마트는 109개에서 124개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홈플러스의 점포 수는 개점과 폐점을 거듭해 5년 전과 같아졌다. 점포 수는 늘었는데 직원이 줄었으니 늘어난 업무량은 고스란히 기존 직원들의 몫이다.

한 마트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다는 A씨는 "예전에 비해 2배는 힘들어졌다"고 토로한다.

그는 "예전에는 업무 중간 커피도 마시고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여유가 없다"며 "누가 가지 말라고 하지는 않지만 바쁠 때는 눈치가 보여 화장실도 자제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이마트는 캐셔 직군에서부터 정규직 전환을 시작했다. 회사가 '정규직' 전환을 선언한 이후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이상 직원을 뽑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명절, 대목 등 사람이 필요할 때 급하면 6개월 단위로 '스태프'라 불리는 아르바이트만 뽑을 뿐이었다. 이렇게 고용된 아르바이트 직원은 최대 1년까지만 일할 수 있었다.

직원을 뽑으면 정규직이 되니 아예 뽑지 않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마트 직원 B씨는 "더 일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사람이 참 많았다"고 토로했다. 지금은 그마저도 잘 뽑지 않는다.

이마트는 정규직 전환을 하면서 기본 근무시간을 기존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였다. 최저임금이 상승하자 시급을 맞추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다. 직원들이 이에 항의하자 이마트는 어차피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시급제가 아닌 월급제로 임금을 산정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적게 일하고 임금은 높아지니 더 좋지 않느냐고도 했다.

지금 당장은 회사의 말이 맞을지 모르지만 직원들은 이마저도 경계하고 있다. 앞으로 최저임금이 더 올라갔을 때에도 8시간 일하는 것만큼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측은 "7시간으로 단축하고 돈도 더 주니 더 뛰어다니면서 일해야 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인력이 줄어들었는데 업무시간까지 줄었으니 업무 강도는 매우 높아졌다. 일부 회사 영업점은 직원들에게 최대한 더 많은 일을 시키기 위해 부서간 통폐합을 결정했다. '정규직화된' 노동자들은 더 많은 영역을 담당하며 더 넓은 마트를 뛰어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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