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돌에 새긴 이름과 가슴에 새긴 이름

제주'4.3사건의 두 인물

김재성 주필 승인 2019.04.03 13:43 | 최종 수정 2019.04.04 09:28 의견 11

[한국정경신문=김재성 주필] 제주시 노형동 충혼묘지 입구, 화강암 비석이 하나 서있다. 4.3사건 토벌을 지휘했던 박진경 대령의 추모비다. 비문은 비석 건립의 내력을 이렇게 적었다.

<제주도 공비소탕에 불철주야 수도위민(守道爲民)의 충정으로 선두에서 지휘하시다가 불행이도 단기 4281년(1948) 6월18일 장렬하게 산화하시다. 이에 우리 30만 도민과 군경원호회가 합동하여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단갈(短碣)을 세우고 추모의 뜻을 천추에 길이 전한다..>

그러나 이 비석은 다수 제주도민에게 추모의 염보다는 분노의 기억을 되살려 주는 저주의 표적이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주도 슬픈 역사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까닭은 박진경 살해범으로 총살형을 당한 문상길중위의 군사재판 최후진술이 압축적으로 말해준다.

<이 법정은 미군정의 법정이며‥ 우리는 죽을 결심을 하고 행동한 것이다. 재판장 이하 전 법관도 모두 우리 민족이기에 우리가 반역자를 처형한 것에 대해서는 공감을 가질 줄로 안다. 우리에게 총살형을 선고하는데 대하여 민족적 양심 때문에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법정에 대하여 조금도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 -이하 생략 >

문상길 중위는 손선호 양회천 신상우 강승규 하사와 함께 48년 9월 23일 수색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형 집행에 앞서 그의 마지막 유언은 사건의 원인을 더 간명하게 말해준다.

<22살 꽃다운 나이에 나 문상길은 저 세상으로 갑니다. 여러분은 한국의 군대입니다. 매국노의 단독정부 아래서 미국의 지휘 하에 한국민족을 학살하는 한국군대가 되지 말라는 것이 저의 마지막 염원입니다. -이하생략>

7년 7개월 동안 (48,3,1~54,9,21) 제주 인구 10분의 1인 3만 명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4,3 사건은 47년 3월 1일, 3.1절 기념행사가 시발점이다.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소년이 다치고 투석으로 항의하는 군중을 향한 경찰 발포로 3명이 죽고 8명이 부상한 사건이다. 이어서 3월 10일 제주도 일원 총파업. 사태해결을 위해 서북청년경찰이 760명, 조선경비대 복장의 서북청년단 투입. 1년 동안 2,500명 검속, 고문으로 숨진 희생자가 발생한다.

마침내 48년 4월 3일 새벽 2시를 기해 제주도 인민위원회 무장투쟁 돌입, 경찰 사망 4명 행방불명 2명 민간인 사망 8명 부상 19명 무장대 사망 2명의 희생자 발생. 미군정은 4월 17일 국방경비대에 사태진압을 명령.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의 이름, 진압 명령을 받은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이다. 그는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횡포가 사태의 원인으로 판단, 4월 28일 무장대 측 김달삼과 협상, 전쟁중지, 평화협상 성사시킨다.

그러나 미군정 수뇌부는 협상을 파기, 김익렬 중령을 해임하고 후임에 박진경 중령을 발령한다. 취임일성, <폭동진압을 위해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박진경의 토벌작전은 잔혹했다. 그의 손에 잡히면 운 좋으면 포로, 아니면 죽음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는 부임 27일 만에 6,000명을 체포한 전과를 인정받아 6월 1일자로 대령진급, 6월 17일 요정에서 축하연을 한 후 다음날 새벽 3시 부하의 총탄에 죽는다.

1987년 4월 3일 제주대학생들이 ‘4.3’을 민중항쟁으로 규정한 이래 박진경 대령의 추도비는 시민사회에서 철거론이 제기되고 누군가 비문을 돌로 쪼는 등 수난을 당하고 있다. 반면 문상길 중위와 그 부하들에 대해 이들을 의인으로 추모하는 재조명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돌에 새긴 이름과 가슴에 새긴 이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경상남도 함양과 김해에 동학 농민봉기를 촉발한 조병갑 고부군수 선정비가 있다. 이 선정비들이 떠나는 수령에게 표하는 의례적인 전별 예인지 그의 선정을 기리는 백성들의 자발적인 정성인지 알 수 없으나 고부의 오명이 지워지지 않는 한 이 선정비들은 없느니만 못하게 됐다. 그러고 보면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고 노무현 대통령은 혜안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백이 숙제는 수양산에서 이름 없이 죽어 갔지만 공자와 사마천에 의해 그 이름이 만세토록 전해지고 무덤조차 찾을 길이 없는 안중근 의사는 김제동 씨 말마따나 민족의 가슴가슴에 비석 하나씩을 남겼다.

돌에 새기든 가슴에 새기든 이름을 남기려 함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름은 말 그대로 이르는 말일뿐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핏덩이 같은 단심(丹心)이면 그 뿐, 누구든지 이름을 염두에 두면 그것은 이미 때 묻은 위선이다. 상(相)을 내지 말라는 성인의 말씀이 세세토록 빛을 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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