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나경원 대표의 발언으로 본 한국정치의 건강진단

나경원 대표의 발언은 한국정치의 척추암 증상이다.

김재성 주필 승인 2019.03.20 10:07 | 최종 수정 2019.03.27 12:56 의견 20

[한국정경신문=김재성 주필]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조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조사한 2018년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10점 만점에 8점, 167개국 가운데 21위다. 일본은 23위 미국은 25위, 우리보다 아래다. 

우리나라는 지난 해 조사에서는 상위 20개국의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국가로 분류됐다. 그런데 올 해는 지난 해 23위였던 코스타리카가 8.07로 20위로 올라서는 바람에 21위로 밀려나 한 등급 아래인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국가로 분류됐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지수가 높다고 하니 좋기는 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과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상위권에 드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가?  

이코노미스트 조사는 △선거절차와 다원주의 △정부의 기능성 △정치 참여 △정치 문화 △시민 자유 등 다섯 가지 척도로 평가했다. 민주주의 지수는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가 일차적 조건일 것이요, 그 형식과 절차 속에 담긴 내용이 성숙도를 결정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검진을 한 번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은 한국정치의 MRI 촬영결과를 판독할 수 있는 압축사건이라 할 수 있다. 나경원 대표는 이 연설에서 두 가지 중요한 언급을 했다. 하나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 대변인’이고 하나는 ‘반민특위 분열’ 론이다. 

‘김정은 대변인’ 건은 지난해 9월 26일자 블룸버그통신 이유경 기자가 ‘한국의 문재인은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 됐다’는 기사가 발단이다. 이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주선하는 과정에서 나올 법한 역할론으로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 대표는 이를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으로 비틀어 말함으로서 <김정은에 충성맹세>등 시중에 난무하는 가짜뉴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정권의 카운터 파트인 제 1야당 원내대표 발언 치고는 너무나 치졸하지만 여기까지는 당사자의 자질문제로 치부할 수 있다.  

문제는 “반민특위로 분열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라는 발언이다. 이 발언이야 말로 한국정치의 척추암 증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 유전적 병력(病歷)을 간추려 보자. 

이승만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하여 친일파를 대거 등용했다. 그리고 일제청산 대신 반공을 들고 나왔다. 박정희 일대기에 다까끼 마사오(高正雄) 중위 시절의 활동을 공산당 추적으로 기술했듯이 친일파들은 자신의 친일을 반공으로 호도했다. 

이렇게 첫 단추를 잘 못 낀 한국 현대사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면서 눈 위에 서리, 서리 위에 또 눈이 쌓이는 모순의 중첩으로 이어졌다. 1949년 10월 이승만의 지시로 자행된 반민특위 강제해산은 그 분수령이었다.   

1948년 국회는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 친일파들에게 사형, 무기징역, 재산몰수, 공민권 정지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법에 따라 특별검찰부는 1949년 1월  박흥식을 비롯 김연수, 최린 등을 체포하고 이광수, 최남선, 윤치호, 노덕술, 방응모 등 7000 여명을 조사하고 559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런데 이승만은 "친일파를 처단하자고 하는 자는 빨갱이"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더니 80여명의 경찰관을 동원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 조사원 40여명과 특별검찰부장을 경찰서에 감금했다. 이렇게 일제청산은 무위로 끝나고 이로부터 한국정치는 등뼈 굽은 기형구조가 되었다.

한국의 정당정치에서 유난히 저주가 난무하는 내출혈 증상을 보이는 것은 친일, 구테타의 주역과 그에 기생하는 세력이 60년 가까이 집권하면서 정치를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전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에게는 지면 죽는 길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4.19, 6.3, 5.18, 6월 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중의 봉기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양호한 점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은 주발에 구정물 격이니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국민이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와서야 되겠는가?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