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무기 싸고 질 좋아, 방산 세계 8위..러시아 의식 줄타기" WSJ

"핵심 동맹 미국과 경제 파트너 중국 사이 몸부림" 이코노미스트

김병욱 기자 승인 2023.02.03 13:58 | 최종 수정 2023.02.03 14:03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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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로 수출되는 K-9 자주포의 훈련 모습. [자료=연합뉴스]

[한국정경신문=김병욱 기자] 한국이 러시아와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지원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갈수록 커진다는 외신 분석이 잇따라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해를 넘기며 장기화하는 가운데, 방위산업 강국으로서 서방의 주요 동맹국들에 무기 수출을 늘려가고 있는 한국의 역할론이 점차 주목받는 모습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나라들이 물자 보충을 위해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서 한국의 무기 수출 증가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제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WSJ는 한국 정부가 그간 우크라이나에 방독면과 방탄조끼, 의약품 등을 보내왔지만 국내 법률상 제약으로 인해 살상 무기의 직접 제공은 거부해왔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최근 방한에서 한국에 무기 지원을 촉구한 점을 거론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지난달 30일 최종현학술원에서 특별 강연을 통해 "한국이 군사적 지원이라는 특정한 문제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며 "일부 나토 동맹은 교전 국가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바꾸기도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그는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교전 국가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 정책에서 선회했던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한국이 우크라이나 직접 지원 대열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WSJ는 한국이 세계 4대 방산 강국에 올라서겠다는 목표라며, 세계 무기시장에서 독특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국이 이번 전쟁 국면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세계 무기수출에서 한국은 전체의 2.8% 비중을 차지하며 8위를 기록했다. 2012∼2016년 1%로 13위였던 것에서 급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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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방문해 방산현장 점검 중인 윤석열 대통령. [자료=연합뉴스]

여기에 이번 전쟁은 한국산 무기 수요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각종 군사물자를 지원하는 폴란드와 57억6천만달러(7조588억8천억 원) 규모의 K2 전차와 K-9자주포 수출 계약을 맺었고, 이에 힘입어 한국의 방산 수출액이 작년 11월 말 기준 170억 달러(약 20조 8천억 원)로 전년도(72억 5천만달러)의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브뤼셀자유대학 한국학 교수는 "많은 유럽 국가들이 다른 동맹국보다 무기를 더 빨리 인도해줄 수 있는 한국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냉전 이후 독일과 영국 등 유럽의 전통적인 군사 강국들은 재래식 무기 생산능력을 감축했지만,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방산 역량을 지속해서 끌어올려온 만큼 신속한 무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한국은 지속해서 무기를 대량 생산하기 때문에 단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비축량도 계속 보충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여기에 1990년대 초 주한미군 감축과 미국의 전술핵 철수 등도 재래식 무기 생산 능력을 증대할 필요성을 키웠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지속적인 군사훈련을 통해 한국산 무기의 품질이 검증됐다"고 말했다.

WSJ는 한국 방산역량이 양적인 측면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했다며 KF-21 전투기 개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성공 등 사례도 소개했다.

다만 이 매체는 한국이 원유 수입국이자 북한에 영향력이 있는 러시아와 적대적 관계가 되는 것을 피하려 미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짚었다.

작년 10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러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고에 대해 "살상 무기나 이런 것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사실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달 31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국방장관에서 이종섭 국방장관이 전날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과의 면담을 언급하며 "국제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군사지원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와 관련,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윤 대통령이 작년 5월 취임 이후 러시아의 침공을 '불법적'이라고 규정해 비판해왔다며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윤 대통령의 시각과 국내 정치 상황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지난 11일 AP 통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조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런 침략행위를 저지르고도 국제사회에서 상응하는 제재나 징벌을 받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북한으로 하여금 도발을 부추기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한 발언을 인용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을 더 확고한 글로벌 선도국가이자 '규칙에 기반한 질서'의 수호자로 만들겠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포부"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국은 현행 대외무역법 등 관련 규정으로 인해 '평화적 목적'이 아닌 무기 수출이 어려우며,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국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야당의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적대적이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태도도 미온적"이라며 "이 대표는 애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쟁에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우위를 점한 여소야대 정국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위한 법률 개정이 난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무기 지원을 놓고 국내 여론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작년 6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찬성 답변은 15%에 그쳤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안보 핵심 동맹인 미국과 주요 경제 파트너인 중국 사이에서 공간을 차지하고자 몸부림치고 있다"며 "윤 대통령으로서는 국내 상황 때문에 글로벌 리더십을 발현할 기회를 놓쳐야 한다는 것이 아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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