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5월 정신의 참된 계승자

한명철 승인 2022.05.18 10:59 | 최종 수정 2022.05.19 16:27 의견 1
한명철 한전산업개발 사외이사

[한전산업개발=한명철 사외이사] 다시 5월이다. 우리의 5월은 푸른 신록의 계절이기보다 피로 얼룩진 역사의 흔적이 채 지워지 않은 아픔의 계절이다. 해마다 5월이면 나는 정의롭고 뜨거운 한 인간, 설훈을 생각한다.

나는 경남대학교에 재학하던 1987년, 전두환 군사 정권이 김대중에게 덮어씌운 거짓 흑색선전에 분노했고 그의 참모습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되겠다는 갈망이 있었다. 현대사에서 소외받아왔던 호남인들의 아픔과 광주 망월동에 잠든 민주 영령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에 경남대 학생들 중 유일하게 평민당 창당 일원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지역 위원장으로 마산에 내려온 설훈의원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의 면모를 알아갈수록 참 인간을 만나는 기쁨이 컸다.

그는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격렬한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순천교도소로 이감되어 광주를 지나가던 중 차 안에서 호송하던 헌병에게 ‘저기가 무등산인가요?’하고 물어본 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감옥에서 전해들은 5.18의 참상에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출소한 그는 운동권 출신의 아내와 결혼하여 신혼여행지로 망월동 묘지를 택하여서 투쟁의 현장에서 죽어간 민주 열사들을 생각하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20대, 꽃다운 시절에 5년 6개월여를 감옥에서 보냈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았던 그는 무등을 바라보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살겠노라 다짐했고 지금껏 그 다짐을 지키며 살고 있다.

출마만 하면 당선이 보장된 고대 학생회장 선거에서 투옥 전과로 정보당국의 감시를 받는 자신보다는 운신이 자유로운 후배가 활동이 용이하다며 후배를 추천하여 당선시켰다. 1984년 12대 총선 때 신민당 공천을 받았으나 재야 세력의 입장을 고려하여 불출마했다.

1988년 13대, 1992년 14대에는 군사 정권의 교체와 김대중 당선을 위해 자신보다 더 인지도가 높은 이에게 공천권을 양보하여 기꺼이 그들의 당선을 도왔다. 고대 총학생회장이나 국회의원이라는 포기하기 힘든 사적인 영예보다 민주화와 정권교체라는 대의가 그에게는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다

1993년 당시, 일곱 살이던 첫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월세를 살던 형편에도 조의금 전액을 딸이 다니던 학교에 장학금으로 내 놓은 일은 눈물겨웠다. 준비해 온 합의금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교통사고를 낸 젊은이의 앞날을 염려해서 오히려 탄원서까지 썼던 일은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보상금 전액을 상처받은 학생들을 위해 쓰겠노라고 전남의 한 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은 일화도 감동이다. 그는 사사로운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남보다 먼저 희생하고 양보했으며 언제나 대의를 위해 살았다.

5월의 정신을 이곳저곳에서 말하지만 정작 알맹이는 없고 오직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세상에는 그는 아직도 5월이면 서슬 퍼렇게 살아오는 5월 정신의 참된 계승자요, 우리의 영원한 동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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