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스테이지] 어딜 향해 걷고 있나..황정민의 '오이디푸스' 뜨겁고 뜨거웠다

이슬기 기자 승인 2019.02.09 09:40 의견 0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사진(자료=샘컴퍼니)

[한국정경신문=이슬기 기자] "내 발아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빙글빙글 도는 무대 위 오이디푸스는 끝없이 걷고 또 걸으며 질문한다. 방향과 목적지를 잃고 헤매는 한 남자의 애타는 절규다. 아버지를 죽이지 않기 위해. 어머니와 결혼하지 않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알 수 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지난해 '리차드 3세'로 10년 만에 연극 무대로 복귀한 황정민이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정해져 있는 삶을 벗어나려 발버둥 친 남자의 옷을 입었다. 이야기의 끝에서. 황정민은 돌고 돌던 무대를 벗어나 고통 속에 천천히 객석을 가로지른다. 

얄궂은 운명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걷는 오이디푸스의 뜨거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황정민의 클라스를 입증하듯 '오이디푸스'는 그의 연기로 고전의 맛을 끌어올리고 풍미를 더한다.

'오이디푸스'는 고대 그리스 작가 소포클레스의 작품이다.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고 다른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양부모는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낳아서는 안 될 자식들을 낳게 될 운명"이라는 신탁은 그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게 했다.

극은 오이디푸스의 현재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테베의 강이 마르자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받는다. 재앙의 원인은 테베의 전왕 라이오스의 죽음이다. 그를 죽인 범인을 찾아 벌을 줘야 한다는 것. 오이디푸스는 범인을 찾으려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본다. 운명은 피하려 할수록 조용히 천천히 그를 따르고 있다.

황정민이 연기하는 오이디푸스는 뜨겁다. 비극적인 운명 앞에 절규는 처절하고 인간미 넘치는 그림을 완성한다. 10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을 가졌지만 몰입과 감정 동화는 3시간 대극장 못지않다. 

저 먼 고전의 이야기는 황정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21세기 바로 오늘의 이야기가 된다.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오늘을 살고 있기에. 어디로 걸어야 하냐 묻는 오이디푸스의 질문이 온전히 이야기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치열하고 처절하게. 인간은 매 순간 스스로에게 "어디로 가야 하지" 물으며 삶을 살아낸다.

물론 배해선, 박은석, 최수형, 정은혜, 남명렬 등의 탄탄한 캐스팅도 제 몫을 다 한다.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연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원캐스팅으로 완성도를 한껏 끌어올린 선택이 통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먼 시대의 이야기가 오늘의 관객들에게 전율을 선사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샘컴퍼니와 황정민은 해내고 있다. 묵직한 여운이 휩쓸고 간 자리에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가 자리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오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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