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소금 뿌리고 기해년 문을 열자

새 해 맞기 전에 축귀가 필요하다.

김재성 주필 승인 2019.01.30 23:39 | 최종 수정 2019.03.27 12:56 의견 11

[한국정경신문 김재성 주필] 인간에게 기억 능력이 없다면 시간은 현재만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미래가 있음을 아는 것도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미루어 아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는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온다. 

기억은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과도 관계가 있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따라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과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는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역사가 진보하고 문명이 발전하는 것은 과거를 성찰적으로 기억함으로서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병폐는 과거를 성찰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데 있다. 

해방된 조국이 일제의 적폐를 청산하기는 커녕 유산으로 대물림함으로서 모순의 중첩을 낳은 것이다. 그 원조는 이승만이다. 여기에 박정희는 헌정유린의 쿠데타 선례를 보탰고 전두환은 군사문화의 내면화를 고착시켰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적폐청산 논란이 다시 뜨거워졌다. 이 논란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청산대상인 적폐들이 승복은 커녕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 악습은 해방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일파들은 미 군정과 이승만의 비호아래 재빨리 반공 외투를 입고 독립지사들을 공산당으로 몰아 탄압했다. 

반민족 반민주 세력은 1945년 이후 미 군정 4년, 장면 정권 1년, 김대중 노무현 10년을 뺀 60여년을 집권하면서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 뿌리 깊은 기득권을 형성했다. 그 광범위하게 포진한 기득권 세력은 역으로 민주정부를 능멸하면서 개혁을 저지했고 그런 기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또 하나는 ‘"포용하고 미래에 힘쓰자"는 주장이다. "언제까지 적폐청산만 할 것이냐"는 말을 곁들인 이 주장은 제법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구덩이에서 나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말처럼 논리적 모순이 있다. 특히 지식인이 이런 말을 하면 짐짓 개혁의 김 빼기 전략이다. 물론 미래가 중요하다. 그러나 과거의 질곡을 풀지 않고는 미래로 나아 갈수가 없다.   

지금도 습관처럼 지키는 사람이 있다. 가족중에 상가에 다녀오면 집에 들어오기 전에 소금을 뿌렸다. 상가의 음귀(陰鬼)가 집안에까지 따라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단절의 의례인 것이다. 이처럼 역사에도 계승할 것이 있고 단절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단절해야 할 역사를 정리하지 못했다.    

며칠 있으면 설날이다. 어릴 적 이맘때면 이웃집에 빌려 주었던 물건을 찾아오고 또 돌려주는  심부름을 했던 기억이 난다. 돈은 물론이고 몽당 빗자루 하나라도 남의 집에서 명절을 보내게 하지 않는 관습이었다. ‘내 집 물건이 남의 집에서 설을 보내면 그 물건이 나를 버린다’는 속담이 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보낼 건 보내고 챙길 것은 챙겨서  깔끔하게 정리하라는 뜻이리라.

천하태평을 의미하는 주역의 태괘(泰卦) 효사(爻辭)에 <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 无往不復>는 말이 있다. 겨울이 갔더라도 집수리를 해놓지 않으면 추위에 떠는 고생을 또 겪는다는 뜻이다.

해방직후에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질곡이 7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발목을 잡고 있지 않은가? 기해년 문턱에서 일제 악귀, 쿠데타 음귀 온갖 잡귀 단절하는 소금을 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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