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문의 복심 양정철의 사양, 미덕 아니다

양정철 사양만이 능사 아니다.

김재성 주필 승인 2019.01.09 18:26 의견 6

[한국정경신문 김재성 주필] “내가 안 간다.” 지난 4일 문재인 정부의 스페어타이어로 인식되고 있는 양정철 전 비서관이 제2기 비서실 개편을 앞두고 자신의 이름이 하마평에 오르는 것을 차단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게이오 대학 방문교수로 있다.    
 
그가 말한대로 8일 발표한 비서실 개편에서 그의 이름은 빠졌다. 의외다. 사람들은 지난 연말 양비(양청철 비서관의 약칭)가 귀국했을 때 2년 가까이 해외 유랑을 끝내고 요직에 안착할 것으로 짐작했다. 문재인 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양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사양은 2017년 5월 대선직후다. 누가 봐도 0순위였다. 다만 어느 자리인가가 관심사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돌연 “제 역할은 여기까지다. 멀리서 그 분을 응원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며 아름다운 퇴장을 선언했다. 

“내가 문재인 정부에 몸담고 있으면 친문패권주의 논란이 나올 수 있고 결국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줄 것이다.” 공을 세우고 떠나는 그의 변이었다. 떠나면서 그는 지인과 언론인들에게 고별사를 남겼다. “정권교체를 이룬 것으로 제 꿈은 달성됐기에 여한이 없습니다.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이니 3철(전해철 양정철 이호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주시기 바랍니다.”  

고별사 한 장 띄우고 표표히 떠나는 ‘양비’는 멋있었다. 여론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보수언론도 그를 공을 세우고 떠나는 현실 속의 노자로 추켜세웠다. 대원군이 생사가 불분명한 명성왕후의 장례를 치룬 심보인지 알 수 없지만. 

측근의 임명직 불참 선언은 97년 동교동 가신그룹의 선례가 있다. 그러나 그 때는 오로지 김대중 후보를 위한 득표 전략의 하나였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를 미덕으로 여기는 전통은 제왕의 시대 산물이다. 유방劉邦을 도왔던  장량張良, 구천勾踐을 도운 범려范?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남아 있으면 제왕의 빛을 가리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선출된 권력은 다르다. 선출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한시적 권력이다. 그리고 약속이행의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은 선택받기 위해 함께 노력했던 집단의 공동책임이다. 따라서 공신의 참여가 마땅하고 자연스럽다. 제도적 개념은 그렇다.  

그래서 ‘양비’의 두 번째 사양은 미덕이 아니다. 촛불혁명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출범할 때 사양은 미덕이었다. 모두가 선망하는 명예스러운 자리였으니까. 지금은 다르다. 햇수로 출범 3년째 접어든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 성적표는 어떤가? 적폐청산, 거시경제, 민생경제, 모두가 기대에 못 미친다. 물론 범기득권 연합의 저항 등 이유는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시간이 경과하면 사라지는가? 오히려 더 강화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과는 문재인 정권 창출에 참여한 모든 공신들의 공동의 공이고 공동의 과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 창출의 공신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지금쯤 무한책임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금 빠지는 것은 책임회피다. 지금은 복심들이 참여할 때다. 참여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보좌하고 조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비선운운은 감수해야 한다. 

문 대통령과 그 복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춘추시대 진晉 진秦 전쟁이 벌어졌다. 진晉 혜공이 정鄭나라에서 선물한 명마 소사小駟를 타려했다. 경정慶鄭이라는 대부가 말렸다. “본토에서 생산된 말이라야 지리에 익숙하고 주인과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다른 곳에서 온 말은 두려운 상황을 만나면 제 멋대로 뛰어 상황을 망칩니다.” 혜공은 고집을 부렸다. 결국 혜공은 마차가 수렁에 빠져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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