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낭비 줄이는 소비기한 도입..'책임' 소재는 분명히 해야

김제영 기자 승인 2021.06.25 15:28 | 최종 수정 2021.06.25 18:56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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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경제부 김제영 기자

[한국정경신문=김제영 기자] 냉장 보관이 필요한 식품은 대개 유통기한이 짧다.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며칠 지난 식품을 발견하면 찝찝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먹을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는 인식이 생겨 고민하다 폐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유통기한과 별도로 음식을 소비해도 되는 ‘소비기한’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소비기한은 식품을 섭취해도 변질과 이상이 없는 소비 최종시한을 뜻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식품 섭취 가능기한 내에서 품질변화 시점 기준 유통기한은 60~70%, 소비기한은 80~90% 정도다. 즉 소비기한이 현 식품 판매가능 기간인 유통기한보다 길다. 소비기한 도입 시 판매 및 섭취 기간이 길어져 음식물 쓰레기가 현재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음식물 폐기량은 하루 1만5000여톤이다. 전체 쓰레기의 약 30%를 차지한다. 또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만 연간 8000억원에 이른다. 이에 정부는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에 나섰다. 최근 식품표시관고법 개정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골자는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변경 표기한다는 내용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소비기한제는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유제품 등 일부 품목은 유예기간 3년을 부여한다.

소비기한 도입은 환경적·경제적 측면에서 득이다. 우선 낭비가 줄어든다. 이는 최근 메가트렌드로 주목받는 ESG경영과도 맞물린다. 음식물 폐기가 줄면 소비 자체도 줄어 포장재·용기 쓰레기 또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쓰레기 폐기 및 식품 제조에 들어가는 비용도 절약된다.

또 식품 수출 시 판매 경쟁력도 높아진다. 유럽연합과 미국·캐나다·중국 등 외국에서는 대부분 제품의 소비기한을 표시하고 있다. 유통기한을 표기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 정도다. 유통기한이 적힌 한국 제품은 외국 소비자들에게 유통기한은 다소 생소할 수밖에 없다.

다만 소비기한 도입 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제품 유통 및 소비 전 ‘책임’에 대한 주체다. 소비기한 도입하면 제조·유통사와 소비자 사이에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유통기한은 제품 변질 및 문제 시 제조사나 유통사가 책임진다. 반면 소비기한은 유통기한 이후 소비자 재량에 달렸다. 섭취가능 기간은 개인의 보관법에 따라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유의 경우 한국소비자원의 실험 발표에 의하면 최대 50일까지 변질 없이 섭취가 가능하다. 단 개봉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냉장온도인 0~10℃를 지켰을 때만 해당한다.

이에 낙농가와 일부 식품업계는 소비기한 도입에 우려를 표한다. 현실적으로 현행 유통과정에서 해당 온도를 완벽히 관리하기 힘든 상황이다. 2020년 소비자연맹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유통매장의 법정냉장온도 준수율은 70~80%이다. 책임이 모호한데다 관리도 미흡하니 자칫 제조·유통사가 책임을 떠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비기한 도입 이전 선행과제가 있다. 우선 소비기한의 개념에 대한 국민 교육 및 홍보다. 소비기한의 일부 책임은 소비자에게도 할당된다. 바른 보관법 등 소비기한에 대한 인식을 심어 식품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적냉장온도 저감화도 필요하다. 소비기한을 도입한 국가는 안전성을 위해 현재 0~5℃에서 유제품을 관리한다. 우리나라는 온도 허용범위가 넓을뿐더러 냉장 유통망 ‘콜드체인’도 미약한 편이다. 콜드체인을 갖출 유예기간으로 냉장식품만 3년이 연장된 이유이기도 하다.

제품 유통·책임 관련 가이드라인이 명확해지면 이점이 큰 소비기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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