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김명수 대법원장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

김재성 주필 승인 2018.11.26 14:17 의견 6

[한국정경신문 김재성 주필] 지난 해 8월 25일 대법원장에 내정된 김명수 후보자가 16년 탄 SM5 승용차에 부인과 반려견을 태우고 손수 운전으로 춘천을 떠나 서울로 오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국민들은 그의 소탈한 행보에 박수를 보냈고 그 훈김에 인사청문회도 아주 수월하게 넘어갔다.  

그는 이임 인사에서 “누구나 힘들어 하는 길, 나서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취임사에서는 “사법 행정권 남용을 막겠다.”며 앵글을 좁혔다. 국민들은 그가 시대가 그에게 요구하는 소명이 무엇인지 충분히 안다고 믿었다.  
그러나 취임 1년이 지난 지금 대법원장을 보는 국민의 눈길은 실망의 빛이 역력하다. 광범위 하게 뿌리내린 사법부 내 보수 엘리트주의 세력이 각자의 분야에서 개혁을 저지하는 데도 어떤 용단도 내리지 않고 미적거리며 실기하고 있는 데 대한 실망감이다.

이쯤 되자 민주화의 등대역할을 해 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회장 김호철 변호사)을 비롯한 개혁에 동력이 되어 줄 사람들이 오히려 반발하고 나섰다. ‘민변’을 주축으로 한 법률가 631명이 22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특별재판부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과 법관 탄핵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 그것이다.  

김명수 원장 자신이 만든 ‘사법발전위원회’의 후속 추진단(단장 김수정 변호사)도 반기를 들었다. 추진단이 마련한 개혁안,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재판 개입 여지가 있는 독소를 제거한 사법행정회의로 대체하는 안을 전달했으나 김명수 원장이 의견수렴을 이유로 미룬 데서 생긴 반발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농단 핵심은 법원행정처를 매개로 한 청와대의 재판개입이다. 법원행정처를 연결고리로 청와대, 국정원 등과 재판일정, 재판결과를 조율하는 방식이다. 일제 강제징용 손배소 사건은 대표적인 조율 사례다. 이 판결이 한·일 외교에 미칠 영향을 외교부에 물었다는 자체가 처음부터 판결을 미루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음을 뜻한다. 

양승태 전 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은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군불을 지피기 위해 기둥을 뽑는 행위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 요체다. 그 근저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아우를 죽인 카인의 후예, 누구든지 권력을 독점하면 전횡의 유혹에 빠진다>는 고백에 있다. 통진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화, 한번 무너진 사법부 성역은 이렇듯 전방위적으로 파급되었다. 이로인한 국민의 사법부 불신을 상고법원에 비길수 있는가?     

“이의 있으면 항소 하시오”초대 대법원장(김병로)이 이승만 대통령의 압력을 일거에 뿌리친 일화는 사법부 독립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따라다니는 메뉴다. 그 역사를 알기에 국민은 위장전입 한 건 없는 김명수 원장을 믿었다. 그 정도 수신(修身)이면 사법부를 지킬만한 강단이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사법농단 청산노력을 사법농단이라고 역공하고 사법부 독립 훼손을 심판하기 위한 입법추진을 삼권분립 훼손이라고 매도하는 적반하장은 사법부 수장의 “누구나 힘들어 하는 길을 나서겠다.”던 초심의 실종 탓이다. 
본인의 귀에도 들어갔을까? 법조계에 회자되고 있는 <송양지인>은 춘추시대, 송(宋)나라 양공(襄公)의 ‘군자 병’(good boy syndrome)을 빗댄 성어다. 그는 서형에게 임금 자리를 양보하려했던 사람이지만 결국 그 때문에 나라를 망치고 자신도 죽었다. 

기원 전 639년 유명한 홍강 전투, 늦게 도착한 적군이 강을 건너느라 대오가 흐트러졌을 때 참모들이 공격을 재촉하자 군자는 상대가 싸울 준비가 안됐는데 공격하지 않는 법이라며 듣지 않았다. 결과는 대패, 이로 인해 양공은 죽고 송나라는 혹독한 패전의 굴욕을 겪었다. 후세 사가들은 이를 송양지인(宋襄之仁)으로 명명했다. 

누구나 덕장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공자도 노(魯) 나라 사구(司寇 법무부장관)를 맡아서는 소정묘를 속전속결로 처형했다. 불의에 베푸는 온정은 덕이 아니다. 그것은 무능이다. 송양지인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초나라의 울지 않는 새(장왕)처럼 어느 날 털고 일어나 쾌도난마식으로 밀어 붙일 수도 있다. 국민은 그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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