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도 ‘을’이라는 대기업의 ‘갑질’..SKC, 중견기업 해외공장 옆 ‘기웃기웃’

SKC “말聯 주정부가 선정해 준 곳일 뿐..전기료 저렴해 최적 조건”
일진 “기온·습도 등 동박 만드는데 최악..2년간 시행착오 끝에 흑자”
업계 “기술력·인력 빼 갈 우려 있다..양사간 생존 싸움 불가피할 것

김형규 기자 승인 2020.10.20 06:00 의견 0

[한국정경신문=김형규 기자] SKC가 올해 초 100% 지분을 인수하며 품에 안은 자회사 SK넥실리스가 해외에 동박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국내 중견기업 공장과 불과 15분 거리에 위치한 부지를 고려하고 있어 업계에서는 ‘대기업 갑질’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특히 중견기업의 기술력과 인력을 빼내갈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SK넥실리스는 자사 해외공장 부지를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사라와크주 쿠칭시에 추진 중이다. 쿠칭시에는 이미 동종업계 중견기업 일진머티리얼즈가 2017년 동박공장을 설립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사라와크주 쿠칭시(사진 왼쪽)에 있는 일진머티리얼즈 공장(파란색 빗금)과 SK넥실리스가 최초로 물색한 공장 부지 (빨간색 빗금) (자료=구글맵 편집) 

일진그룹 계열사인 일진머티리얼즈는 1978년 국내 최초로 동박 기술개발에 들어가 1989년 전북 익산에 공장을 건설하며 동박 생산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이다. 특히 전기 배터리용 동박 시장에서는 세계 점유율 2위를 기록할 정도로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SK넥실리스는 당초 해외공장 부지 선정에서 일진머티리얼즈 공장과 불과 담장을 사이에 둔 공장을 후보지로 물색했다. 하지만 국내 여론이 악화되자 최근 일진 공장과 15분 떨어진 두 곳을 공장 후보지로 선정했다.

SK넥실리스가 새로 추진 중인 동박공장 부지(A, B). 일진머티리얼즈 공장과 15분 거리(10km)에 있다.  (자료=구글맵 편집)

SK넥실리스 관계자는 “해당 공장 부지는 말레이시아 사라와크주정부에서 추천한 곳”이라며 “우리는 주정부가 지정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을’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쿠칭은 전기를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어 전기료가 생산원가의 25%에 달하는 동박공장을 설립하는 데 최적의 조건”이라며 “만약 쿠칭시에 공장을 짓더라도 (일진머티리얼즈의)인력을 빼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진머티리얼즈는 SK넥실리스의 이러한 공언에도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SK넥실리스의 전신인 LG금속이 이미 일진머티리얼즈의 인력을 빼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LG금속은 1996년 일진머티리얼즈 공장이 있는 전북 익산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있는 전북 정읍에 동박 공장을 준공했다. 이후 LG금속에는 일진머티리얼즈의 핵심 엔지니어와 주요 숙련공 15명이 이직했다.

이에 일진머티리얼즈 관계자는 “쿠칭시는 전기료만 저렴할 뿐 동박을 만드는 데는 기온과 습도 등이 맞지 않아 최악의 조건이지만 (일진의 경우)납품업체와 가까워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라며 “2017년 공장을 설립한 후 2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품 불량을 개선한 결과 지난해 겨우 흑자로 돌아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이 쿠칭시에 똑같은 동박 공장을 설립하는 것은 상도덕에도 크게 어긋나며 기술을 탈취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며 “SK넥실리스는 쿠칭시를 벗어난 말레이시아 다른 지역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SK넥실리스는 올해 말까지 해외공장 부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만약 쿠칭시로 부지를 결정할 경우 일진이 구축한 협력업체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일진 입장에서는 그룹의 운명이 대기업에 의해 가려질 처지에 처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에 두 회사 간 생존을 건 싸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