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길 산책] 박노수 윤동주 이상의 자취, 옥인동 통인동 골목을 걷다

김재희 칼럼니스트 승인 2018.01.02 10:34 의견 0

[한국정경신문=김재희 칼럼니스트] 서울 서촌 통인시장 골목을 지나 조금 윗동네로 들어서면 공방이나 음식점, 쇼핑을 할 수 있는 가게들은 줄어드는 대신 조용한 주택가가 이어진다. 근처에 화가 박노수 미술관과 박노수의 스승이었던 이상범 화백의 가옥 등 예술가들이 거처했던 주거지와 그들의 숨결을 만날 수 있다. 실제로 거주하던 때의 모습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당시의 주택의 모습과 생활상도 짐작해볼 수 있을 뿐더러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서촌의 골목길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효자베이커리(224m)-박노수 미술관(124m)-윤동주 하숙집터(479m)-이상범 가옥(388m)-홍건익 가옥(482m)-대오서점(27m)-이상의 집까지 거리다.

■ 근대 한국화의 거장을 만날 수 있는, 박노수 미술관

1030년대 지어진 박노수 화백의 가옥

 

효자베이커리에서 도로를 건너면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조금 걸어 올라가면 오른쪽에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이 있다. 산수화에서 좀 더 발전한 한국화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거장 박노수 화백(1927.2.17.~2013.2.25.)의 가옥이다. 아담한 이층 벽돌 건물에 나무와 화초가 심어져 있는 마당은 여느 가정집과 비슷하다. 구립미술관이라는 생각에 크고 반듯한 미술관을 생각했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다. 박노수 화백이 생활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주택을 그대로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어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1930년대 지어진 주택이지만 겉모습은 현대의 주택과 다름없다. 1층은 벽돌재로 2층은 목재를 주로 사용했다. 현관 옆에는 벽난로가 있는 응접실과 대청이 있다. 입식 부엌도 갖추어져 있다. 현관 바닥과 쪽마루, 안방과 거실 공간은 전통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2층에 있는 박노수 화백의 작업실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1973년 박노수 화백이 이 집을 사들여 이곳에서 40년간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는 종로구에서 관리하는 구립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연희전문 학교 시절 잠시 머물었던,  윤동주 하숙집터

3개월의 짧은 기간 윤동주가 거주하며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던 윤동주 하숙집터

 

시인 윤동주가 하숙을 하던 집터는 물론 그의 산책길 등 서촌 일대에는 그와 관련된 곳들이 많다. 윤동주는 이곳 옥인동에 있는 소설과 김송의 집에서 친구인 정병욱과 함께 하숙을 했다. 그는 이곳에 살면서 누상동과 효자동 일대를 산책하며 시상을 떠올리곤 했다. 이곳에서 지낸 기간은 고작 3개월이지만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주옥같은 그의 작품들이 이 시기에 쓰여졌다. 1917년 12월에 태어난 윤동주는 1945년 2월 옥중에서 사망했다. 광복을 몇 개월 남겨놓고, 그의 짧은 생애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그의 작품과 흔적들은 아직도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줄 모른다. 윤동주의 하숙집터라는 표지판과 담장에 걸쳐있는 세 개의 우산에 쓰여진 윤동주의 시가 인상 깊다. 누군가 살고 있는 건물이라 함부로 들어갈 볼 수는 없지만 현관문을 불쑥 열고 윤동주가 산책길에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 박노수의 스승, 청전 이상범의 가옥

배렴, 박노수 등의 화가를 배출했던 청전 이상범이 살았던 가옥

 

천정 이상범은 화가 박노수의 스승이다. 189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으나 1906년 서울로 올라왔다. 1921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상으로 그의 작가활동이 시작 된다. 1942년부터 1072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이곳에 살면서 배렴, 박노수 등의 화가를 배출했다. 이곳 누하동에서 그의 작품의 완성기를 맞았고, 삶도 마감했다. 실내에는 그의 가족이 생활하던 당시의 모습과 작업도구들이며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마당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장독대도 인상적이다. 가옥은 1030년대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다. 당시 문화예술인들이 거주하던 주택들의 대부분이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당시의 주택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다.

■ 중인들이 많이 살았던 서촌, 역관의 집, 홍건익 가옥

 1930년대 이후 한옥의 특징이 섞여있는 중인의 집, 홍건익 가옥

 

1934년에 홍건익이 이 땅을 매입하여 원래 있던 가옥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지었다. 전통적인 한옥의 배치와 1930년대 이후 건립된 근대 한옥의 특징이 섞여있는 민가 주택이다. 부엌이 실내로 들어오고 쪽마루에는 문을 설치해 복도처럼 이용하도록 했다. 후원으로 통하는 일각문은 물론 우물까지 갖춘 서울에서 유일한 한옥이다.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서울시에서 오래된 한옥을 구입하여 정비하는 과정에서 토지 대장을 통해 홍건익이 이 집을 매입하기 전에 고영주라는 인물이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영주는 역관이었으며 이 주변에 중인들이 많이 거주했다는 사실도 확인이 됐다.  서울시 공공한옥으로 전시관과 어린이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 70년 가까이 서촌 골목과 함께 해온, 대오서점

70년이라는 세월, 서촌 골목길을 지켜온 대오서점

 

195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대오 서점. 이곳을 운영하던 조대식, 권오남의 이름을 따서 대오서점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10년, 20년이면 오래되었다는 말을 들을 만큼 빨리 변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서울에서 70년이라는 시간은 대단하다. 빚바랜 간판과 지붕은 오래된 서점의 나이를 말해준다. 지금은 골목길을 걷는 여행자와 주민을 위한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낡고 허름한 건물과 골목을 지나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면서 서울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가수 아이유가 앨범표지를 촬영하면서 유명해졌지만 서울에서 이만한 오래된 서점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 천재 시인, 이상의 집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모금 운동과 기업 후원을 통해 지켜낸 이상의 집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300m 거리. 자하문로7길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상의 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한옥 지붕의 통유리로 되어 있는 자그마한 건물이 눈에 띈다. 그 일대가 이상이 살던 집터다. 이상이 세살부터 20년 동안 살았던 집터의 일부다. 문 입구에는 '미래문화유산'이라 새겨진 글씨의 현판이 걸려있다. 이곳이 철거될 위기에 놓였을 때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모금 운동과 기업 후원을 통해 매입해 보존 관리하고 있다. 통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단촐한 실내에 이상의 작품과 이상 문학 수상작 등 그와 관련된 서적과 자료가 진열되어 있다. 천원을 기부하면 커피 한잔이 제공된다. 차를 마시기 위해 탁자에 앉으면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느린 서울의 골목길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서촌의 골목과 함께 세월을 보내온 또 한 곳, 중국 음식점 영화루

 

오래된 골목 서촌과 함께 사람들을 부르는 통인스윗의 타르트

서촌 골목길에는 문화유적이나 예술가들, 한옥 건물 외에도 아기자기한 공간과 음식점 등 가볼만한 곳이 많다. 오래된 중국 음식점 '영화루', 생긴지 얼마 안됐지만 입소문을 통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통인스윗'의 타르트 등 주말에 아이와 손잡고 혹은 연인과 데이트하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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