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스테이지] 연극의 맛 살린 선택!..'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슬기 기자 승인 2018.07.11 14:19 의견 0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공연 사진(자료=연극열전)

[한국정경신문=이슬기 기자] 연극적 매력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70여 가지가 넘는 캐릭터를 소화하는 다섯 배우의 재기발랄함이 시선을 끈다. 웃고 우는 객석의 반응만 보아도 마음껏 즐기고 나올 수 있는 무대가 확실하다. 하지만 원작 소설의 깊이를 기대했다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 수 있겠다.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한국 무대를 찾아왔다. 2010년 스웨덴 베스트셀러상, 2011년 독일 M-피오니어상, 덴마크 오디오북상, 2012년 독일 부흐마크트 선정 최고의 작가 1위, 프랑스 에스카파드 상 등 화려한 이력으로 유럽을 휩쓴 소설이 원작이다. 주인공 매 순간 역사적 사건과 함께한 알란의 100년 인생을 담는다.

글로 쓰여진 작품을 다른 콘텐츠로 재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무궁무진하게  펼쳐졌던 상상은 제한되고 시공간이 제약도 따른다. 원작의 진한 깊이를 느끼기에 모자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알란의 걸음 걸음이 갖는 의미와 메시지에도 무게를 덜어냈다. 소극장에서 150여 분이 넘는 시간을 버티는 것 또한 체력적인 부담으로 자리한다.

때문에 작품은 ‘무대’라는 콘텐츠에 맞게 작품을 새로이 구성했다. 먼저 알란의 100년 인생 중 주요 에피소드를 고르고 압축했다.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도록 빠른 전개와 속사포 같은 대사 전달을 선택했다. 적재적소에 배치한 웃음 포인트도 관객의 피로를 덜고 몰입을 끌어올린다.

작품은 알란 캐릭터 자체의 감동을 강조한다. 10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한 노인이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알란의 모습이 울림을 준다. 우연으로 가득 찬 삶이지만 그 안에는 우연을 자신의 삶으로 만드는 알란의 긍정적 에너지, 용기와 열정이 있다.

다섯 명의 배우는 알란과 그 외 캐릭터를 오가며 풍성한 재미를 선사한다. 새로운 국가 이야기를 꺼낼 때는 해당 국가의 전통춤을 춘다. 알란과 알란이 만난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웃음과 위로의 균형도 신경을 썼다. 극장이 떠나가라 웃던 관객들이 훌쩍이는 소리를 내게 되는 건 제작진의 선택이 잘 통했음을 보여준다.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공연 사진(자료=연극열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스웨덴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알란이 이야기를 담는다. 누울 침대와 대화할 친구, 술 마실 여유만 있다면 된다는 철학의 그는 100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창문을 넘어 양로원을 몰래 빠져나간다. 

알란은 우연히 거액이 든 악당의 트렁크를 훔치고 모험 아닌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세계의 역사적 순간들에서 중요한 일을 해냈던 과거를 들려준다. 극은 알란이 양로원 창문을 넘어 마주하게 된 새 세상과 과거의 세상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많은 이야기를 빠르게 풀어내기에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질 때도 있다. 이름표를 바꾸며 시시각각 변하는 캐릭터를 보느라 남다른 집중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극장을 나서는 걸음에는 만족감이 차오르는 시간이다. 알란처럼 과감하게 양로원 창문을 넘는 선택을 할 수 없는 일상일지라도.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삶을 고민하고 응원하게 된다.

오는 9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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